매일시 963

취한 사람 _ 이생진

취한 사람 이생진 취한 사람은 사랑이 보이는 사람 술에 취하건 사랑에 취하건 취한 사람은 제 세상이 보이는 사람 입으로는 이 세상 다 버렸다고 하면서도 눈으로는 이 세상 다 움켜쥔 사람 깨어나지 말아야지 술에 취한 사람은 술에서 사랑에 취한 사람은 사랑에서 깨어나지 말아야지 * 2022년 8월 19일 금요일입니다. 가끔 맨 정신에는 이해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취중진담처럼 마음을 여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눈빛으로 말하다 _ 나호열

눈빛으로 말하다 나호열 떠나보지 않은 사람에게 기다려보지 않은 사람에게 손아귀에 힘을 주고 잔뜩 움켜쥐었다가 제 풀에 놓아 버린 기억이 없는 사람에게 독약 같은 그리움은 찾아오지 않는다 달빛을 담아 봉한 항아리를 가슴에 묻어 놓고 평생 말문을 닫은 사람 눈빛으로 보고 눈빛으로 듣는다 그리움은 가슴 속에서 피어나는 꽃 그저 멀기만 하다 멀어서 기쁘다 * 2022년 8월 17일 수요일입니다. 대부분은 눈빛만 봐도 알 수 있기 마련입니다. 그리운 것들을 생각해보는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

모든 것을 사랑하라 _ 도스토예프스키

모든 것을 사랑하라 도스토예프스키 모든 잎사귀를 사랑하라 모든 동물과 풀들을 사랑하라 그대 앞에 떨어지는 한 가닥 빗줄기조차도 그대가 모든 것을 사랑하면 모든 것 속에 담긴 신비도 보리라 그대가 모든 것 속에 담긴 신비를 보면 날마다 모든 것을 더 잘 이해하리라 마침내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그대 자신과 세상 전체를 사랑하리라 * 2022년 8월 16일 화요일입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조금 더 받아들이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빈 마음 _ 법정 스님

빈 마음 법정 스님 등잔에 기름을 가득 채웠더니 심지를 줄여도 자꾸만 불꽃이 올라와 펄럭거린다. 가득 찬 것은 덜 찬 것만 못하다는 교훈을 눈앞에서 배우고 있다. 빈 마음, 그것을 무심(無心)이라고 한다. 빈 마음이 곧 우리들의 본 마음이다. 무엇인가 채워져 있으면 본 마음이 아니다. 텅 비우고 있어야 거기 울림이 있다. 울림이 있어야 삶이 신선하고 활기차다. * 2022년 8월 12일 금요일입니다. 빈 공간이 없으면 완성되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울림이 있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말의 포만 _ 김남조

말의 포만 김남조 넓디넓은 할 말들의 바다에 내 말의 한 방울을 보태고 울창한 숲의 허구 많은 할 말들의 잎새에 한 잎 나의 말을 보탠 후 반은 세상의 고요 반은 스스로의 침묵 이 갈피에 잠입해 들어왔다 한동안 말의 포만에 지쳐 견딜 수 없어서이다 * 2022년 8월 11일 목요일입니다. 말이 너무 많으면 정신이 없기 마련입니다. 생각은 많이, 말은 절제하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훗날이 오늘이다 _ 유안진

훗날이 오늘이다 유안진 나 밖을 떠도는 내가 찾아다니는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그 우주 어딘가 머릿속 전두엽과 후두엽 사이 틈 없는 틈새를 호시탐탐 노리다가 내 안으로 들어와서 거꾸로 흐르는 시간 안에 나를 잡아두고 싶어하는 내 눈 응시하고 있으면서도 보고 있지 않는 눈동자 그 너머로 얼핏 잡힌 뻥 뚫린 거긴가 등잔 밑이 어둡다고 먼 데가 가까운 데라고 훗날이 오늘이라고 고개 드니 입구이자 통로이자 출구의 문인 내 눈동자 너머로 광활한 虛空 beyond here and now 나를 열지 않고는 들어갈 수도 없고 나를 닫지 않고는 나갈 수도 없는 훗날의 거기를 오늘 여기로 살아야 한단다 * 2022년 8월 10일 수요일입니다. 먼 훗날로 생각했던 날이 바로 오늘일 수 있습니다. 최선을 다하는 하루 되시기 바..

장마 _ 장성희

장마 장성희 빗방울 하나에도 떨어지는 이유가 있네 빗방울 하나에도 잠들지 못하는 이유가 있네 이렇게 하늘이 우는 날 떨어져 멍들은 꽃잎에도 흩어져 내리는 잎새들도 비와 비 사이 서러운 곡예일랑 우산일랑 접어놓고 온몸으로 잔을 드세 슬퍼 누운 꽃잎들에게 하늘이 베풀어주는가 씻김굿의 눈물 한마당 * 2022년 8월 9일 화요일입니다. 어제 내린 많은 비로 인천과 서울 강남의 피해가 큽니다. 비 피해 조심하시고 건강한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

원근법 _ 권경인

원근법 권경인 천천히 걸어도 빠르게 닿아버리는 목적지는 싫다 허기진 밤길 오래 걸어 행복도 열정도 제 몫의 것만 제 품속에 거두며 허공에 온몸을 담그고 서 있는 나무들 산이 높으면 골이 깊고 깊은 물은 조용히 흐르는 법이다 이미 많은 걸 깨달아 단순해진 숲에 비 내리고 까맣게 바람 분다 새들은 길을 잃지 않는다 * 2022년 8월 8일 월요일입니다. 많이 오르면 많이 내려갈 수 있는 법입니다. 오름과 내림을 가늠하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연탄 한 장 _ 안도현

연탄 한 장 안도현 또 다른 말도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이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 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산산히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네. 나는. * 2022년 8월 5일 금요일입니다. 누군가의 희생이 있어야 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