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시 963

그때는 그때의 아름다움을 모른다 _ 박우현

그때는 그때의 아름다움을 모른다 박우현 이십 대에는 서른이 두려웠다 서른이 되면 죽는 줄 알았다 이윽고 서른이 되었고 싱겁게 난 살아 있었다 마흔이 되니 그때가 그리 아름다운 나이였다. 삼십 대에는 마흔이 무서웠다 마흔이 되면 세상 끝나는 줄 알았다 이윽고 마흔이 되었고 난 슬프게 멀쩡했다 쉰이 되니 그때가 그리 아름다운 나이였다. 예순이 되면 쉰이 그러리라 일흔이 되면 예순이 그러리라. 죽음 앞에서 모든 그때는 절정이다 모든 나이는 아름답다 다만 그때는 그때의 아름다움을 모를 뿐이다. * 2021년 5월 10일 월요일입니다. 그 때 그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 법입니다. 미래를 위해 현재에 충실한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봄나물 비빔밥 _ 함영숙

봄나물 비빔밥 함영숙 냉이는 널 닮고 달래는 날 닮고 들판 헤매는 종종 걸음아 쑥을 캐며 쑥덕쑥덕 돗 나물은 옹기종기 들판 지나 언덕 길을 슬금슬금 올라가서 깊은 계곡 청솔 밑에 눈맞치고 누워보니 하늘에 뭉개구름 뭉글뭉글 흘러가고 마음에 첫사랑이 몽글몽글 피어나네 네 지게의 마른나무 한나절 쉬고 있고 내 바구니 봄나물은 봄향기 품고 있고 한걸음에 내려가서 아궁이에 불을 지펴 봄나물과 참기름을 듬북섞여 비벼 놓고 너랑나랑 사랑하며 한밥상에 앉고싶네 * 2021년 5월 7일 금요일입니다. 여러가지 재료들이 한 데 섞여 조화로운 맛을 내는 비빔밥. 있는 재료들을 잘 버무리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상처에서 배운다 _ 이만섭

상처에서 배운다 이만섭 묵은 나무의 옹이를 보면 대개 상처가 안으로 들려있다 밖으로 드러난 경우라도 애써 그곳을 감싼 흔적이 역력하다 몸 일부분이기에 당연한 일일 테지만 할 수 없는 경우라도 고통의 세월 밖으로 새살을 돋아내며 아물 때까지 참아냈으리라 설사 아물지 못하고 살아가는 경우라도 몸 안에서 베푼 용서가 장하다 일찍이 상처로서 몸을 지켜냈기에 옹이는 나무의 훈장과 같다 옹이를 보면 나무가 더 단단해 보인다 * 2021년 5월 6일 목요일입니다. 크고 작은 상처를 통해 경험과 노하우가 쌓이는 법입니다. 단단해지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천리향 _ 이해인

천리향 이해인 어떠한 소리보다 아름다운 언어는 향기 멀리 계십시오 오히려 천리 밖에 계셔도 가까운 당신 당신으로 말미암아 내가 꽃이 되는 봄 마음은 천리안 바람 편에 띄웁니다 깊숙히 간직했던 말 없는 말을 향기로 대신하여 * 2021년 5월 4일 화요일입니다. '삶'이란 글자를 자세히 보면 '사람'이 들어 있습니다. 삶을 함께 하는 사람들을 챙기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5월 아침 _ 김영랑

5월 아침 김영랑 비 개인 5월(五月) 아침 혼란스런 꾀꼬리 소리 찬엄(燦嚴)한 햇살 퍼져오릅내다 이슬비 새벽을 적시울 지음 두견의 가슴 찢는 소리 퍼어린 흐느낌 한 그릇 옛날 향훈(香薰)이 어찌 이 맘 홍근히 안 젖었으리오만은 이 아침 새 빛에 하늘대는 어린 속잎들 저리 부드러웁고 그 보금자리에 찌찌찌 소리내는 잘새의 발목은 포실거리어 접힌 마음 구긴 생각 이제 다 어루만져졌나 보오 꾀꼬리는 다시 창공(蒼空)을 흔드오 자랑찬 새하늘을 사치스레 만드오 사향(麝香) 냄새도 잊어 버렸대서야 불혹(不惑)이 자랑이 아니되오 아침 꾀꼬리에 안 불리는 혼(魂)이야 새벽 두견이 못 잡는 마음이야 한낮이 정익(靜謚)하단들 또 무얼하리오 저 꾀꼬리 무던히 소년(少年)인가 보 새벽 두견이야 오-랜 중년(中年)이고 내사 불..

그리움의 숫자만큼 미소를 짓자 _ 송정숙

그리움의 숫자만큼 미소를 짓자 송정숙 사랑하는 사람 기다릴 때는 다림질을 하자 짹깍이는 시계 소리 곱게 다리고 그리움 뿌려가며 옷을 다리자 사랑하는 사람 기다릴 때는 다림질을 하자 나오는 한숨 곱게 다려 다려진 숫자만큼 미소를 짓자 사랑하는 사람 기다릴 때는 다림질을 하자 기다림은 애가 타니 옷에 베어 있는 향기라도 맡자 사랑하는 사람 기다릴 때는 다림질을 하자 그리고 그리움의 숫자만큼 미소를 짓자 * 2021년 4월 30일 비오는 금요일입니다. 무언가 잘못되었을 때는 원인을 분석해봐야 합니다. 한 주 마무리 잘 하시고 편안한 주말 되세요. 홍승환 드림

백지의 꿈 _ 이기철

백지의 꿈 이기철 새봄의 개나리향 말고는 아무 것도 내 위에 쓰지 말라 씀바귀 위에 내리는 이슬 말고는 아무 것도 내 위에 쓰지 말라 처음 가 본 길처럼 설레는 마음 말고는 아무 것도 내 위에 쓰지 말라 유리창에 부딪친 그날의 첫 햇빛 말고는 아무 것도 내 위에 쓰지 말라 어떤 화염에도 타지 않는 금결의 말 말고는 아물면 보석이 되는 상처 말고는 잊혀져도 맹서로 남는 사랑 말고는 날아가도 꽃이 되는 씨앗 말고는 * 2021년 4월 29일 목요일입니다. 황사를 머금은 비 소식이 있습니다. 외출하실 때 우산 챙기시고 건강한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

사람 _ 신혜경

사람 신혜경 한문수업 시간 정년퇴임 앞둔 선생님께 제일 먼저 배운 한자는 옥편의 첫 글자 한 일(一)도 아니고 천자문의 하늘 천(天)도, 그 나이에 제일 큰 관심사였던 사랑 애(愛)는 더더욱 아니고 지게와 지게작대기에 비유한 사람 인(人)이었다 마흔을 훌쩍 넘은 지금도 사람 인(人)자를 바라보고 있으면 등 기대고 있는 한 사람이 아슬하다 너와 나 사이가 아찔하다 * 2021년 4월 28일 수요일입니다. 서로 기대고 함께 해야 쓰러지지 않는 게 사람입니다. 기대고 있는 사람과 함께 하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우리 할머니 말씀 _ 박노해

우리 할머니 말씀 박노해 어린 날 글자도 모르는 우리 할머니가 그랬지 아가, 없는 사람 험담하는 곳엔 끼지도 말그라 그를 안다고 떠드는 것만큼 큰 오해가 없단다 그이한테 숨어있는 좋은 구석을 알아보고 토닥여 주기에도 한 생이 너무 짧으니께 아가, 남 흉보는 말들엔 조용히 자리를 뜨거라 * 2021년 4월 27일 화요일입니다. 뒤에서 흉보는 것보다는 앞에서 잘못을 지적해 주는 게 낫습니다. 잘못을 바탕으로 발전이 있는 법이니까요. 발전하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나의 하늘은 _ 이해인

나의 하늘은 이해인 그 푸른 빛이 너무 좋아 창가에서 올려다본 나의 하늘은 어제는 바다가 되고 오늘은 숲이 되고 내일은 또 무엇이 될까 몹시 갑갑하고 울고 싶을 때 문득 쳐다본 나의 하늘이 지금은 집이 되고 호수가 되고 들판이 된다 그 들판에서 꿈을 꾸는 내 마음 파랗게 파랗게 부서지지 않는 빛깔 하늘은 희망을 고인 푸른 호수 나는 날마다 희망을 긷고 싶어 땅에서 긴 두레박을 하늘까지 낸다 내가 물을 많이 퍼가도 늘 말이 없는 하늘 * 2021년 4월 26일 월요일입니다. 오랜만에 파란 하늘을 볼 수 있는 아침입니다. 한 주의 시작 힘차게 출발 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