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시 152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_ 칼릴 지브란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칼릴 지브란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말라. 그보다 너희 혼과 혼의 두 언덕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 두라. 서로의 잔을 채워 주되 한쪽의 잔만을 마시지 말라. 서로의 빵을 주되 한쪽의 빵만을 먹지 말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되 서로는 혼자 있게 하라. 마치 현악기의 줄들이 하나의 음악을 울릴지라도 줄은 서로 혼자이듯이. 서로 가슴을 주라. 그러나 서로의 가슴속에 묶어 두지는 말라. 오직 큰 생명의 손길만이 너희의 가슴을 간직할 수 있다.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는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다...

단풍 드는 날 _ 도종환

단풍 드는 날 도종환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아는 순간부터 너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방하착(防下着) 제가 키워온, 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 제 몸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가장 황홀한 빛깔로 우리도 물이 드는 날 * 2020년 9월 16일 수요일입니다. 악한 사람도 늘 나쁜 건 아닙니다. 선한 사람도 늘 좋은 건 아닙니다. 선한 사람을 악하게 만들지 않는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

하루를 지내는 동안 _ 차정미

하루를 지내는 동안 차정미 하루를 지내는 동안 슬픔의 무게보다 기쁨의 무게 더 무거워지게 하소서 미움의 부피보다 사랑의 부피 더 두터워지게 하소서 불평의 길이보다 자족함의 길이 더 길어지게 하시고 불화의 면적보다 화평의 면적 더 넓어지게 하소서 베풂의 두께 해를 거듭할 때마다 두꺼워지는 나무의 나이테처럼 굵어지게 하시고 포용력의 깊이 심해처럼 깊어지게 하소서 온유함이 강물처럼 넘실넘실 넘쳐나게 하소서 * 2020년 4월 27일 월요일입니다. 앞만 바라봐서는 점들을 연결해 면을 만들 수가 없는 법입니다. 뒤돌아볼 줄 알아야 점들이 선으로, 다시 면으로 이어집니다. 한 주의 시작 힘차게 출발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그랬다지요 _ 김용택

그랬다지요 김용택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사는 게 이게 아닌데 이러는 동안 어느새 봄이 와서 꽃은 피어나고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그러는 동안 봄이 가며 꽃이 집니다 그러면서, 그러면서 사람들은 살았다지요 그랬다지요. * 2020년 4월 22일 수요일입니다.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을 때는 "방법"이 보이고, 하기 싫어 하는 마음이 있을 때는 "핑계"가 보인다고 합니다. 방법을 찾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4월에 태어난 그대 _ 박정래

4월에 태어난 그대 박정래 당신 생일에 붉은 동그라미 치며 황사바람으로 목이 매캐해지네 냉이 캐는 들녘의 아낙들은 해 지는 줄 모르고 아마도 그런 고즈넉한 어둠이 바쁘게 밀려가고 오던 그런 때 아니던가 쥐불 쫓으며 아쉬운 초저녁 달 불쑥 따서 속 빈 밭고랑에 심으며 보리 싹 맥없이 바람에 눕고 그 파도 위에 당신을 둥근 박에 싣고 떠 보내는 4월은 그래도 희망의 봄 전신으로 전해오는 생명의 전율 모두 모아 뚝배기에 넣고 보글거리는 달래 된장찌개 한 술 떠 당신 입에 넣네, 밤 소쩍새 소리 들리고 내가 줄 수 있는 건 이 작은 행복 당신이 태어났다는 걸 기억하게 하는 것 전생을 열여덟 번 돌아 현생에서 다시 당신을 만나게 된들 4월에 태어난 이 모든 것을 어찌 사랑하지 않으리, 4월의 그 아픔을 * 202..

백지의 꿈 _ 이기철

백지의 꿈 이기철 새봄의 개나리향 말고는 아무 것도 내 위에 쓰지 말라 씀바귀 위에 내리는 이슬 말고는 아무 것도 내 위에 쓰지 말라 처음 가 본 길처럼 설레는 마음 말고는 아무 것도 내 위에 쓰지 말라 유리창에 부딪친 그날의 첫 햇빛 말고는 아무 것도 내 위에 쓰지 말라 어떤 화염에도 타지 않는 금결의 말 말고는 아물면 보석이 되는 상처 말고는 잊혀져도 맹서로 남는 사랑 말고는 날아가도 꽃이 되는 씨앗 말고는 * 2020년 4월 13일 월요일입니다. 하얀 백지가 오히려 나을 수 있습니다. 무언가로 채워져 있는 곳에서는 변화가 어려운 법입니다. 새롭게 받아 든 1주일 분량의 백지를 잘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신정석가 _ 만성

신정석가(新鄭石歌) 만성 장미 한 송이를 책상에 심어 그 꽃이 만발하게 될 때까지 임과 이별하지 않겠습니다. 밤하늘에 별들이 이별이란 글자를 만들기 전에는 임과 이별하지 않겠습니다. 한여름밤에 눈이내려 눈사태가 나기 전에는 임과 이별하지 않겠습니다. 서울거리에 야자수가 무르익어 그 열매를 따먹기 전에는 임과 이별하지 않겠습니다. 민들레 홀씨를 튀겨 모래에 심어 그 꽃이 만발하기 전에는 임과 이별하지 않겠습니다. 청아한 하늘에 달이 스무개가 뜨기 전에는 임과 이별하지 않겠습니다. 먹구름 낀 장마철에 해가 스무개가 뜨기 전에는 임과 이별하지 않겠습니다. 푸른바다에 손을 담가 손끝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파랗게 물들기 전에는 임과 이별하지 않겠습니다. 온 세상 사람들이 머리에 하얀원을, 어깨에 하얀날개를 달기 전..

인생 _ 김정한

인생 김정한 매일 조금씩 떠납니다 아름다운 시간과도 조금씩 이별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도 조금씩 이별을 합니다 때로는 미칠 만큼 가슴 가득히 사랑의 꽃을 피운 적도 있었고 때로는 그리움에 온밤을 새하얗게 지새운 적도 있었지만 오늘은 다 비우고 떠나렵니다 이제, 오랜 고뇌 저편에 상실의 우울증으로 있던 나를 버려두고 빈 몸으로 먼 길을 떠나렵니다 한걸음 두 걸음 옮길 때 마다 매달리며 쫓아오는 물결 같은 그리움이 나를 힘들게 하지만 살다 보면 꺾이고 부딪치고 채이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생의 무대, 그 처연한 시간 위에서 각본대로 살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때로는 지독한 사랑이 나를 여러 번 살렸고 때로는 지독한 외로움이 나를 수없이 죽였습니다 금새 찾아온 가을도 떠나는 소리가 들립니다 구름 가..

너와 나는 _ 이해인

너와 나는 이해인 돌아도 끝없는 둥근 세상 너와 나는 밤낮을 같이하는 두 개의 시계바늘 네가 길면 나는 짧고 네가 짧으면 나는 길고 사랑으로 못 박히면 돌이킬 수 없네 서로를 받쳐 주는 원 안에 빛을 향해 눈뜨는 숙명의 반려 한순간도 쉴 틈이 없는 너와 나는 영원을 똑딱이는 두 개의 시계바늘 * 2020년 3월 13일 금요일입니다. 코로나 펜데믹 선언으로 전 세계가 패닉 상태입니다. 치료제 개발, 확산세 감소 등 하루 빨리 상황이 개선되길 기원합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건강한 주말 보내세요. 홍승환 드림

석련 _ 정호승

석련 정호승 바위도 하나의 꽃이었지요 꽃들도 하나의 바위였지요 어느 날 당신이 나를 찾은 후 나의 손을 처음으로 잡아주신 후 나는 한 송이 석련으로 피어났지요 시들지 않는 연꽃으로 피어났지요 바위도 하나의 눈물이었지요 눈물도 하나의 바위였지요 어느 날 당신이 나를 떠난 후 나의 손을 영영 놓아버린 후 나는 또 한 송이 석련으로 피어났지요 당신을 향한 연꽃으로 피어났지요 * 2020년 2월 21일 금요일입니다. 대구경북 지역에 코로나19 확진환자가 급증했습니다. 개인위생에 좀 더 신경 쓰시고 건강한 주말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