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1604

스침에 대하여 _ 송수권

스침에 대하여​ 송수권 직선으로 가는 삶은 박치기지만 곡선으로 가는 삶은 스침이다 스침은 인연, 인연은 곡선에서 온다 그 곡선 속에 슬픔이 있고 기쁨이 있다 스침은 느리게 오거나 더디게 오는 것 나비 한 마리 방금 꽃 한 송이를 스쳐가듯 오늘 나는 누구를 스쳐 가는가 저 빌딩의 회전문을 들고 나는 것 그것을 어찌 스침이라 할 수 있으랴 스침은 인연, 인연은 곡선에서 온다 그 곡선 속에 희망이 있고 추억이 있고 온전한 삶이 있다 그러니 스쳐라 아주 가볍게 천천히. * 2022년 10월 19일 수요일입니다. 하나의 시스템에 의지하는 건 정말 위험한 일임을 카카오 사태로 확인했습니다. 스치는 좋은 인연들을 만드는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

청소를 하다 만난 것들

청소를 하다 만난 것들 박상희 언젠가 쓰일 것이라 챙겨둔 것들 이제 보니 아무 작에도 쓸모가 없다 한정된 공간을 그저 차지하고 우두커니 있다 흔하지 않아 아껴 두었던 것들 기억이 소중하여 간직해 둔 것들 먼지만 자욱이 쌓여 있다 세월이 감에 이렇듯 쓸모없는 것들을 차곡차곡 가슴에다 담아두고 쪼그려 앉아있다 더러는 비워야 하는 것을 훌훌 털어야 했던 것을 숨이 막히도록 쌓아 두었다 때로는 가슴앓이를 하면서도 때로는 눈물을 흘리면서 한 점 버리지 못한 것들 청소를 하다 만난 것들이 나를 보며 한숨을 쉰다. 쪽거울 안에서 웃는 사람이 이제 버릴 것은 버리고 살라며 거울 속에서 빙그레 웃는다. * 2022년 10월 17일 월요일입니다. 카카오톡, 카카오뱅크, 다음메일, 티스토리가 안 되네요. 하나로 모든 것을 ..

해녀의 꿈 _ 이해인

해녀의 꿈 이해인 욕심 없이 바다에 뛰어들면 바다는 더욱 아름다워요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사랑 안에서 자유롭습니다 암초를 헤치며 미역을 따듯이 전복을 따듯이 힘들어도 희망을 꼭 따오겠어요 바다 속에 집을 짓고 살고 싶지만 다시 뭍으로 올라와야지요 짠 냄새 가득 풍기는 물기 어린 삶을 살아내기 위하여ㅡ * 2022년 10월 14일 금요일입니다. 욕심 없이 뛰어들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희망을 따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바람에도 길은 있다 _ 천상병

바람에도 길은 있다 천상병 강하게 때론 약하게 함부로 부는 바람인 줄 알아도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길을 바람은 용케 찾아간다 바람길은 사통팔달이다. 나는 비로소 나의 길을 가는데 바람은 바람길을 간다. 길은 언제나 어디에나 있다. * 2022년 10월 12일 수요일입니다. 유연함을 가져야 문제의 해결책을 얻을 수 있습니다. 바람길을 찾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나무책상 _ 이해인

나무책상 이해인 숲의 향기 가득히 밴 나무책상을 하나 갖고 싶다 편히 엎디어 공상도 하고 나무냄새 나는 종이를 꺼내 그림도 그리고 편지도 쓰고 시의 꽃을 피우면서 선뜻 나를 내려놓아도 좋을 부담 없는 친구 같은 책상을 곁에 두고 싶다 동서남북 네 귀퉁이엔 비밀스런 꿈도 심어야지 외롭다고 느낄 때마다 살짝 웃어보는 나를 어진 마음으로 받아주는 그 평범해 보이지만 아름다운 깊이로 나를 제자리에 앉히는 향기로운 나무책상을 하나 갖고 싶다 * 2022년 10월 11일 화요일입니다. 용케 피해 다니던 코로나에 드디어 처음 결렸습니다. 코로나와 독감 조심하시고 건강한 한 주 되세요. 홍승환 드림

내일을 예약합니다 _ 오광수

내일을 예약합니다 오광수 내일을 예약합니다. 저기 저 하늘과 같이 눈부시게 파란 내일을 예약합니다. 내일은 생각이 젊어져서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정열이 살아나고 내일은 가슴이 건강해져서 진리를 위해 양심의 고동을 울릴 수 있고 내일은 마음을 활짝 열어 미움이 사라지고 더불어 사는 날이길, 내일을 예약합니다. 저기 저 아침해 같이 타오르는 붉은 내일을 예약합니다. 내일은 생각이 요동쳐서 좌절했던 자리에서 도전하는 자리로 바뀌고 내일은 가슴이 뜨거워져서 사랑을 위해 진실의 고백을 나눌 수 있고 내일은 마음이 손을 잡고 시기와 질투가 없는 정스러운 날이길, 내일을 예약합니다. 남은 건 어제의 실패와 어려움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흘린 진실한 땀과 소중한 노력으로 내일을 예약합니다. * 2022년 10월 ..

주목한다 _ 박노해

주목한다 박노해 한번은 너에게도 하늘이 열렸고 네 곁에 신이 다가갔음을 나는 알고 있다 한번은 너에게도 천사와 귀인이 걸어왔고 한번은 악마를 보았음을 나는 알고 있다 한번은 예술가였고 탐험가였고 시인이었고 한번은 창조자였고 혁명가였고 구도자였고 지금도 그 모든 네가 있음을 나는 알고 있다 단지 네가 주목하지 않았을 뿐 세상에는 경악할 진실들이 걸어온다 인생에는 여정의 놀라움이 찾아온다 한번은 한번쯤은 다시 네 곁을 서성이다 지나치고 네 가슴의 창문을 두드리는 네 안의 네가 살아있다 다만 무언가에 사로잡혔고 주인의 눈으로, 목적의 눈으로, 주목하지 않았을 뿐 네 안에 이미 있었다 나는 너를 주목하느니 * 2022년 10월 6일 목요일입니다. 주목해서 눈여겨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작은 ..

산책 _ 조병화

산책 조병화 참으로 당신과 함께 걷고 싶은 길이었습니다 참으로 당신과 함께 앉고 싶은 잔디였습니다 당신과 함께 걷다 앉았다 하고 싶은 나무 골목길 분수의 잔디 노란 밀감나무 아래 빈 벤치들이었습니다 참으로 당신과 함께 누워 있고 싶은 남국의 꽃밭 마냥 세워 푸르기만한 꽃밭 내 마음은 솔개미처럼 양명산 중턱 따스한 하늘에 걸려 날개질 치며 만나다 헤어질 그 사람들이 또 그리워들었습니다 참으로 당신과 함께 영 걷고 싶은 길이었습니다 당신과 함께 영 앉아 있고 싶은 잔디였습니다 * 2022년 10월 5일 수요일입니다. 그저 걷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맑아질 때가 있습니다. 오늘 점심엔 잠깐이라도 짬을 내서 산책을 해보세요. 홍승환 드림

시월 이야기 _ 이향지

시월 이야기 이향지 만삭의 달이 소나무 가지에서 내려와 벽돌집 모퉁이를 돌아갑니다 조금만 더 뒤로 젖혀지면 계수나무를 낳을 것 같습니다 계수나무는 이 가난한 달을 엄마 삼기로 하였습니다 무거운 배를 소나무 가지에 내려놓고 모로 누운 달에게 "엄마" 라고 불러봅니다 달의 머리가 발뒤꿈치까지 젖혀지는 순간이 왔습니다 아가야아가야 부르는 소리 골목을 거슬러 오릅니다 벽돌집 모퉁이가 대낮 같습니다 * 2022년 10월 4일 화요일입니다. 하루 하루 가을이 깊어가는 10월입니다. 화요일부터 시작되는 한 주, 힘차게 출발하세요. 홍승환 드림

사는 맛 _ 정일근

사는 맛 정일근 당신은 복어를 먹는다고 말하지만 그건 복어가 아니다, 독이 빠진 복어는 무장 해제된 생선일 뿐이다 일본에서는 독이 든 복어를 파는 요릿집이 있다고 한다, 조금씩 조금씩 독의 맛을 들이다 고수가 되면 치사량의 독을 맛으로 먹는다고 한다 그 고수가 먹는 것이 진짜 복어다 맛이란 전부를 먹는 일이다 사는 맛도 독 든 복어를 먹는 일이다 기다림, 슬픔, 절망, 고통, 고독의 맛 그 하나라도 독처럼 먹어보지 않았다면 당신의 사는 맛도 독이 빠진 복어를 먹고 있을 뿐이다 * 2022년 9월 30일 금요일입니다. 희노애락 속에 사는 맛이 있습니다. 기쁨과 즐거운 사는 맛을 느끼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