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시 963

빈 집 _ 기형도

빈집 기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 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 2020년 12월 7일 월요일 절기상 대설입니다. 코로나19의 재확산이 심상치 않은 상황입니다. 개인위생과 생활방역을 잘 지키는 한 주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행복의 얼굴 _ 김현승

행복의 얼굴 김현승 내게 행복이 온다면 나는 그에게 감사하고, 내게 불행이 와도 나는 또 그에게 감사한다. 한 번은 밖에서 오고 한 번은 안에서 오는 행복이다. 우리의 행복의 문은 밖에서도 열리지만 안에서도 열리게 되어 있다. 내가 행복할 때 나는 오늘의 햇빛을 따스히 사랑하고 내가 불행할 때 나는 내일의 별들을 사랑한다. 이와 같이 내 생명의 숨결은 밖에서도 들이쉬고 안에서도 내어쉬게 되어 있다. 이와 같이 내 생명의 바다는 밀물이 되기도 하고 썰물이 되기도 하면서 끊임없이 끊임없이 출렁거린다. * 2020년 12월 3일 목요일입니다. 본인의 언행은 본인의 환경과 경험으로부터 나옵니다. 좋은 환경과 경험을 만드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겨울 사랑 _ 고정희

겨울 사랑 고정희 그 한 번의 따뜻한 감촉 단 한 번의 묵묵한 이별이 몇 번의 겨울을 버티게 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벽이 허물어지고 활짝 활짝 문 열리던 밤의 모닥불 사이로 마음과 마음을 헤집고 푸르게 범람하던 치자꽃 향기 소백산 한쪽을 들어올린 포옹 혈관 속을 서서히 운행하던 별 그 한 번의 그윽한 기쁨 단 한 번의 이슥한 진실이 내 일생을 버티게 할 지도 모릅니다 * 2020년 12월 2일 수요일입니다. 치열하게 고민을 해봐야 좋은 답을 찾는 법입니다. 심도 깊은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바다를 보면 바다를 닮고 _ 신현림

바다를 보면 바다를 닮고 신현림 바다를 보면 바다를 닮고 나무를 보면 나무를 닮고 모두 자신이 바라보는 걸 닮아간다 멀어져서 아득하고 아름다운 너는 흰 셔츠처럼 펄럭이지 바람에 펄럭이는 것들을 보면 가슴이 아파서 내 눈 속의 새들이 아우성친다 너도 나를 그리워할까 분홍빛 부드러운 네 손이 다가와 돌려가는 추억의 영사기 이토록 함께 보낸 시간이 많았구나 사라진 시간 사라진 사람 바다를 보면 바다를 닮고 해를 보면 해를 닮고 너를 보면 쓸쓸한 바다를 닮는다 * 2020년 12월 1일 화요일입니다. 모두 자신이 바라보는 걸 닮아가기 마련입니다. 긍정적이고 좋은 것만 바라보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수선화에게 _ 정호승

수선화에게 정호승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걷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 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않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 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 2020년 11월 26일 목요일입니다. 세계적인 축구 선수 마라도나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고 하네요. 어릴 적 영웅들의 사망소식이 하나 둘 늘어남에 시간의 흐름을 깨닫게 됩니다. 소중한 하루 알차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연인 _ 정호승

연인 정호승 사랑이란 오래 갈수록 처음처럼 그렇게 짜릿짜릿한 게 아니야 그냥 무덤덤해지면서 그윽해지는 거야 아무리 좋은 향기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나면 그건 지독한 냄새야 살짝 사라져야만 진정한 향기야 사랑도 그와 같은 거야 사랑도 오래되면 평생을 같이하는 친구처럼 어떤 우정 같은 게 생기는 거야 * 2020년 11월 24일 화요일입니다. 시간이 지나야 보이는 진실들이 있는 법입니다. 가식된 자신의 언행을 돌아보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_ 칼릴 지브란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칼릴 지브란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말라. 그보다 너희 혼과 혼의 두 언덕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 두라. 서로의 잔을 채워 주되 한쪽의 잔만을 마시지 말라. 서로의 빵을 주되 한쪽의 빵만을 먹지 말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되 서로는 혼자 있게 하라. 마치 현악기의 줄들이 하나의 음악을 울릴지라도 줄은 서로 혼자이듯이. 서로 가슴을 주라. 그러나 서로의 가슴속에 묶어 두지는 말라. 오직 큰 생명의 손길만이 너희의 가슴을 간직할 수 있다.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는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다...

낙엽에 부치는 노래

낙엽에 부치는 노래 권영민 가을은 가을이라서 늘 쓸쓸한 것이 아니다. 한송이 꽃그루를 가슴에 품고 꽃향기 가득 뜨락을 일구는 여인처럼 한그루 작은 나무일지라도 잎새를 피워 숲을 일구는 그날 홀연히 떨어지는 선홍빛 낙엽속에 잘 여문 바람의 빛깔이 인다. 계곡에 흐르는 여울의 노래는 낙엽의 길을 예비하노니 이대로 흐르다가 말없이 스러져도 맑은 날의 꿈을 가득 안고 미지의 세계로 떠나가는가 * 2020년 11월 19일 목요일입니다. 여름장마 같은 가을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거리 위의 낙엽들이 가을의 마지막을 보여주네요. 홍승환 드림

귀천 _ 천상병

귀천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 2020년 11월 18일 수요일입니다. 내일까지 가을비가 예보되어 있습니다. 외출하실 때 우산 챙기시고 건강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_ 이해인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이해인 손 시린 나목(裸木)의 가지 끝에 홀로 앉은 바람 같은 목숨의 빛깔 그대의 빈 하늘 위에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차 오르는 빛 구름에 숨어서도 웃음 잃지 않는 누이처럼 부드러운 달빛이 된다 잎새 하나 남지 않은 나의 뜨락엔 바람이 차고 마음엔 불이 붙는 겨울날 빛이 있어 혼자서도 풍요로와라 맑고 높이 사는 법을 빛으로 출렁이는 겨울 반달이여 * 2020년 11월 17일 화요일입니다. 같은 현상과 팩트를 분석해도 결과물이 다른 법입니다. 인사이트와 문해력을 키우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