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시 1335

우산 속으로 비 소리는 내린다 _ 함민복

우산 속으로 비 소리는 내린다 함민복 우산은 말라가는 가슴 접고 얼마나 비를 기다렸을까 비는 또 오는 게 아니라 비를 기다리는 누군가를 위해 내린다는 생각을 위하여 혼자 마신 술에 넘쳐 거리로 토해지면 우산 속으로도 빗소리는 내린다 정작 술 취하고 싶은 건 내가 아닌 나의 나날인데 비가 와 선명해진 원고지칸 같은 보도블록 위를 타인에 떠밀린 탓보단 스스로의 잘못된 보행으로 비틀비틀 내 잘못 써온 날들이 우산처럼 비가 오면 가슴 확 펼쳐 사랑 한 번 못해본 쓴 기억을 끌며 나는 얼마나 더 가슴을 말려야 우산이 될 수 있나 어쩌면 틀렸는지도 모르는 질문에 소낙비에 가슴을 적신다 우산처럼 가슴 한 번 확 펼쳐보지 못한 날들이 우산처럼 가슴을 확 펼쳐보는 사랑을 꿈꾸며 비 내리는 날 낮술에 취해 젖어오는 생각의..

겨울을 지키는 나무 _ 김길자

겨울을 지키는 나무 김길자 동장군아 내 살갗을 비집고 깊숙이 들어오는 냉혹한 겨울바람에 나는 걸칠 옷도 없어 춥다 너희들과 동거하는 그때부터 손등이 에이는 잔인한 날에도 마음만은 얼지 않으려 온 힘을 다 기울이었다 강촌에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온 산에 뿌옇게 물들이다 말고 사라지듯 하루살이 해도 질 때면 아름답게 빛을 발하는 것을 보며 한파에도 봄을 키우려는 나무에게 함박눈 받는 은총은 긴 기다림의 축복이었다 * 2024년 2월 20일 화요일입니다. 조금 돌아가는 길을 선택하면 붐비지 않습니다. 부지런하게 조금 먼저 출발하는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

당신에게 말걸기 _ 나호열

당신에게 말걸기 나호열 이 세상에 못난 꽃은 없다 화난 꽃도 없다 향기는 향기대로 모양새는 모양새대로 다, 이쁜 꽃 허리 굽히고 무릎도 꿇고 흙 속에 마음을 묻은 다, 이쁜 꽃 그걸 모르는 것 같아서 네게로 다가간다 당신은 참, 예쁜 꽃 * 2024년 2월 19일 월요일입니다. 마지막에 웃는 것보다 자주 웃는 게 더 좋은 인생입니다. 작은 것들에 감사하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비에도 그림자가 있다 _ 나희덕

비에도 그림자가 있다 나희덕 소나기 한차례 지나가고 과일 파는 할머니가 비를 맞은 채 앉아 있던 자리 사과궤짝으로 만든 의자 모양의 그림자 아직 고슬고슬한 땅 한 조각 젖은 과일을 닦느라 수그린 할머니의 둥근 몸 아래 남몰래 숨어든 비의 그림자 자두 몇 알 사면서 훔쳐본 마른하늘 한 조각 * 2024년 2월 16일 금요일입니다. 꾸준함이 쌓이면 실력이 됩니다. 오늘도 실행하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멀리 있기 _ 유안진

멀리 있기 유안진 멀어서 나를 꽃이 되게 하는 이여 향기로 나는 다가갈 뿐입니다 멀어져 나를 별이 되게 하는 이여 눈물 괸 눈짓으로 반찍일 뿐입니다 멀어서 슬프고 슬퍼서 흠도 티도 없는 사랑이여 죽기까지 나 향기 높은 꽃이게 하여요 죽어서도 나 빛나는 별이게 하여요 * 2024년 2월 15일 목요일입니다. 어떤 일이든 쉬워지기 전에는 어려운 법입니다. 한 번 더 움직이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이슬의 말 _ 김상길

이슬의 말 김상길 흔적도 없이 사라지다니요 덧없이 그냥 말라버리는 줄 알았나요? 꽃이 그처럼 생기 있게 웃는 것은 나무가 그처럼 싱그럽게 팔을 벌리는 것은 스며들어 스며들어 생명을 아낌없이 주었기 때문인걸요 소리도 없이 없어지다니요 연기처럼 그냥 사라지는 줄 알았나요? 들판이 그처럼 소리치는 것은 냇물이 그처럼 춤추는 것은 스며들어 스며들어 노래로 다시 태어나기 때문인걸요 꺼진 불처럼 죽어 없어지지 않아요 깊은 땅 속까지 스며들어 스며들어 샘으로 다시 태어나는데요 * 2024년 2월 14일 수요일입니다. 천천히 스며들어 완전히 흡수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충분한 시간을 가지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싹 _ 김지혜

싹 김지혜 한 계절이 가고 한 계절이 오는 사이 비닐봉지 안 감자들은 서로를 억세게 부둥켜안았다 어른 손가락만큼 자라난 독줄기로 전생까지 끈끈히 묶었다 물컹한 사체에서 기어나와 처절히 흔들리는 아직 나 죽지 않았소, 우리 아직 살아 있소 생명 다한 모체를 필사적으로 파먹으며 비닐봉지 안의 습기와 암흑을 생식하며 저 언어들은 푸르게 살아남았다 싹 난 감자알을 창가에 올려놓으며 본다, 한 계절이 가고 한 계절이 어는 사이 나를 비켜간 저 푸른 인연의 독 * 2024년 2월 13일 화요일입니다. 추운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꽃이 피기 마련입니다. 새로운 계절을 준비하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희망 한다발 엮어서 _ 김미경

희망 한다발 엮어서 김미경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아놓은 뜬구름 한 겹 한 겹 벗겨내고 오고 가는 여울목에서 이고 진 세상사 바다에 쏟아붓고 꽃 구름 한 묶음 희망 한 다발 엮어서 찬란하게 떠오르는 해처럼 희망찬 새해가 되길 소망해 봅니다. * 2024년 2월 8일 목요일입니다. 설날 덕분에 매년 초 새해를 두 번 맞이합니다. 갑진년 청룡의 해 값진 한 해 되시길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기억만이 _ 피천득

기억만이 피천득 햇빛에 이슬같은 무지개 같은 그 순간 있었으니 비바람 같은 파도 같은 그 순간 있었으니 구름 비치는 호수 같은 그런 순간도 있었으니 기억만이 이련한 기억만이 내리는 눈 같은 안개 같은 * 2024년 2월 7일 수요일입니다. 할 수 있는 것도 계속 미루다 보면 못 하는 법입니다. 게으름을 극복하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아마도 _ 정유찬

아마도 정유찬 그리우면 무척 그리우면 꽃이 필까 바위에 피어서 꽃잎이 펄펄 날릴까 그리움처럼 한없는 그리움으로 날리는 꽃잎이 울까 울던 꽃잎이 그리움에 또 젖을까 그럴 거야 그러고도 남을 거야 * 2024년 2월 6일 화요일입니다. 길을 아는 것과 그 길을 걷는 것은 분명히 다릅니다. 아는 걸 실행하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