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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구부러진 길이 좋다 _ 이준관

나는 구부러진 길이 좋다                                            이준관  구부러진 길을 가면나비의 밥그릇 같은 민들레를 만날 수 있고감자를 심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날이 저물면 울타리 너머로 밥 먹으라고 부르는어머니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구부러진 하천에 물고기가 많이 모여 살 듯이들꽃도 많이 피고 별도 많이 뜨는 구부러진 길.구부러진 길은 산을 품고 마음을 품고구불구불 간다. 그 구부러진 길처럼 살아온 사람이 나는 또한 좋다.흙투성이 감자처럼 울퉁불퉁 살아온 사람의구불구불 구부러진 삶이 좋다. 구부러진 주름살에 가족을 품고 이웃을 품고 가는구부러진 길 같은 사람이 좋다.  * 2024년 6월 5일 수요일입니다.천천히 구불구불 돌아가야만 만날 수 있는 것들이 있..

물처럼 흘러라 _ 법정

물처럼 흘러라                            법정  사람은 언제 어디서어떤 형태로 살든그 속에서물이 흐르고꽃이 피어날 수 있어야 한다. 물이 흘러야막히지 않고팍팍하지 않으며침체되지 않는다. 물은 한 곳에 고이면그 생기를 잃고부패하기 마련이다. 강물처럼어디에 갇히지 않고영원히 흐를 수 있다면얼마나 좋겠는가.  * 2024년 6월 4일 화요일입니다.흐르지 않으면 정체되고 오염되기 쉽습니다.유연하게 움직이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6월엔 내가 _ 이해인

6월엔 내가                       이해인  숲속에 나무들이일제히 낯을 씻고환호하는 유월 6월엔 내가빨갛게 목타는장미가 되고 끝없는 산향기에흠뻑 취하는뻐꾸기가 된다. 생명을 향해하얗게 쏟아 버린아카시아 꽃타래 6월엔 내가사랑하는 이를 위해더욱 살아 산기슭에 엎드려찬비 맞아도 좋은바위가 된다.  * 2024년 6월 3일 월요일입니다.나무에 앉은 새는 가지가 부러질까 두려워하지 않습니다.새는 나무가 아니라 자신의 날개를 믿기 때문이죠.자신감을 갖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초대 _ 류시화

초대                       류시화  손을 내밀어 보라다친 새를 초대하듯이가만히날개를 접고 있는자신에게상처에게 손을 내밀어 보라언 꽃나무를 초대하듯이겹겹이꽃잎을 오므리고 있는자신에게신비에게 손을 내밀어 보라부서진 적 있는 심장을 초대하듯이숨죽이고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자신에게기쁨에게  * 2024년 5월 31일 금요일입니다.바람이 불지 않을 때 바람개비를 돌리는 방법은 앞으로 힘차게 뛰는 것입니다.새로운 방법을 찾아보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꿈을 생각하며 _ 김현승

꿈을 생각하며                               김현승목적은 한꺼번에 오려면 오지만꿈은 조금씩 오기도 하고안 오기도 한다.목적은 산마루 위 바위와 같지만꿈은 산마루 위의 구름과 같아어디론가 날아가 빈 하늘이 되기도 한다.목적이 연을 날리면가지에도 걸리기 쉽지만꿈은 가지에 앉았다가도 더 높은 하늘로어디론가 날아가 버린다.그러기에 목적엔 아름다운 담장을 두르지만꿈의 세계엔 감옥이 없다.이것은 뚜렷하고 저것은 아득하지만목적의 산마루 어디엔가 다 오르면이것은 가로막고 저것은 너를 부른다.우리의 가는 길은 아 ㅡ 끝없어둥글고 둥글기만 하다.  * 2024년 5월 30일 목요일입니다."그때 그랬더라면"이라는 말 대신 "이번에야말로"라는 말이 더 좋습니다.한 걸음이라도 움직이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

멈추지 말라고 _ 정공량

멈추지 말라고                               정공량 멈추지 말라고흐르는 바람이 내게 말했습니다삶에 지쳐 세상 끝에 닿았다 생각되더라도멈추지 말라고 멈추지는 말라고흐르는 바람이 내게 말했습니다길은 어디까지 펼쳐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길은 그 어디까지 우리를 부르는지아직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오직 내일이 있기에 여기 서서다시 오는 내일을 기다려 봅니다누가 밀어내는 바람일까흐느끼듯 이 순간을 돌아가지만다시 텅 빈 오늘의 시간이 우리 앞에 남겨집니다내일은 오늘이 남긴 슬픔이 아닙니다내일은 다시 꽃 피우라는 말씀입니다내일은 모든 희망을 걸어볼 수 있는오직 하나의 먼 길입니다  * 2024년 5월 29일 수요일입니다.정확한 방향을 모른다면 어떤 바람이 순풍인지 모르는 법입니다.올바른 방향을 ..

냉이의 꽃말 _ 김승해

냉이의 꽃말                            김승해  언 땅 뚫고 나온 냉이로된장 풀어 국 끓인 날삼동 끝 흙빛 풀어진 국물에는풋것의 향기가 떠 있는데모든 것 당신에게 바친다는 냉이의 꽃말에찬 없이도 환해지는 밥상머리국그릇에 둘러 피는 냉이의 꽃말은허기진 지아비 앞에더 떠서 밀어 놓는 한 그릇 국 같아서국 끓는 저녁마다 봄, 땅심이 선다 퍼주고도 다시 우러나는 국물 같은냉이의 꽃말에바람도 슬쩍 비켜하는 들,온 들에 냉이가 돋아야 봄이다봄이라도냉이가 물어 주는 밥상머리 안부를 듣고서야온전히 봄이다 냉이꽃, 환한 꽃말이 밥상머리에 돋았다  * 2024년 5월 28일 화요일입니다.냉이의 꽃말이 '나의 모든 것을 바칩니다'라고 하네요.얼마남지 않은 봄날을 즐기는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

화살나무 _ 박남준

화살나무                         박남준  그리움이란 저렇게제 몸의 살을 낱낱이 찢어갈기 세운 채달려가고 싶은 것이다그대의 품 안 붉은 과녁을 향해꽂혀 들고 싶은 것이다화살나무,온몸이 화살이 되었으나움직일 수 없는 나무가 있다  * 2024년 5월 27일 월요일입니다.길을 아는 것과 그 길을 걷는 것은 분명히 다릅니다.아는 것을 실천하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햇빛 일기1 _ 이해인

햇빛 일기1                        이해인  오늘도한줄기 햇빛이고맙고 고마운위로가 되네 살아갈수록마음은 따뜻해도몸이 추워서얼음인 나에게 햇빛은내가아직 가보지 않은천상의밝고 맑은 말을안고 와 포근히앉아서나를 웃게 만들지 또하루를살아야겠다  * 2024년 5월 24일 금요일입니다.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법입니다.단초를 만드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농무 _ 신경림

농무                        신경림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무대구경꾼들이 돌아가고 난 텅 빈 운동장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따라붙어 악을 쓰는 것은 쪼무래기들뿐처녀애들은 기름집 담벽에 붙어 서서철없이 킬킬대는구나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산 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두고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한 다리를 들고 날라리를 불꺼나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꺼나  * 2024년 5월 23일 목요일입니다.민중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