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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룻배와 행인 _ 한용운

나룻배와 행인 한용운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行人)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얕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십니다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아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어갑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 2024년 3월 14일 목요일입니다. 긍정적인 생각과 행동을 해야 좋은 일이 생깁니다. 긍정의 씨앗을 뿌리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현 위의 인생 _ 정끝별

현 위의 인생 정끝별 세 끼 밥벌이 고단할 때면 이봐 수시로 늘어나는 현 조율이나 하자구 우린 서로 다른 소리를 내지만 어차피 한 악기에 정박한 두 현 내가 저 위태로운 낙엽들의 잎맥 소리를 내면 어이, 가장 낮은 흙의 소리를 내줘 내가 팽팽히 조여진 비명을 노래할 테니 어이, 가장 따뜻한 두엄의 속삭임으로 받아줘 세상과 화음 할 수 없을 때 우리 마주 앉아 내공에 힘쓰자구 내공이 깊을수록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지 모든 현들은 어미집 같은 한없는 구멍 속에서 제 소리를 일군다지 그 구멍 속에서 마음 놓고 운다지 * 2024년 3월 13일 수요일입니다. 익숙한 것, 편안한 것만 찾아서는 성장할 수 없습니다. 새롭게 변화하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모자를 눌러 쓴 시간이 대문 밖으로 걸어나간다 _ 권천학

모자를 눌러 쓴 시간이 대문 밖으로 걸어나간다 권천학 봄이면 모자를 깊이 눌러 쓴 시간이 대문 밖으로 걸어나간다. 나뭇가지에도 걸터앉고 풀잎더미 위에도 주저앉는다 속눈썹에 엉겨 붙은 해의 살들이 오랜만의 외출을 눈부시게 한다. 웅덩이에 고여있는 한 떼의 시간들이 태엽을 탱탱하게 조여 감아서 쏘아대는 빛화살 그늘 속을 관통할 때마다 나뭇가지에 걸려 있는 시간들이 푸득거렸고 주저않아 있던 풀잎들도 일어나 째깍초깍째깍초깍째깍초깍째깍초깍째깍초깍...... 싹트는 소리로 초침을 닦기 시작한다. 모자를 벗어들고 돌아온 외출이 불면의 의자에 앉아 훔쳐온 황금 잔에 시간의 즙을 따라 마시는 봄 그리고 밤. * 2024년 3월 12일 화요일입니다. 모든 문제와 해답은 자신 안에 있는 법입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하루 되시..

그렇게 친해지는 거야 _ 노여심

그렇게 친해지는 거야 노여심 꽃은 피우는 거지 만드는 게 아니야 날마다 들여다보고 날마다 말 걸어서 새싹 쏘옥 나오게 하고 예쁘다 예쁘다 칭찬하면서 어린잎 키우는 거야 꽃받침 위로 꽃잎 터지면 조용! 말하지 말고 그냥 웃어줘야 해 그렇게 핀 꽃은 나를 보고 더 많이 웃을 걸 꽃 하고는 그렇게 친해지는 거야 * 2024년 3월 11일 월요일입니다. '때문에'라고 말하는 사람보다 '덕분에'라고 말하는 사람이 성공합니다. 고마움을 표현하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미라보는 어디 있는가 _ 정끝별

미라보는 어디 있는가 정끝별 미라보 하면 파리의 세느강 위에 우뚝 선 다리였다가 옥탑방 벽에 붙어 있던 바람둥이 혁명가였다가 물리학자였다가 정치가였다가 당신이었다가 퐁네프의 연인들이 달리는 사랑이었다가 미라보, 미라보 하면 신촌이나 부산 어디쯤 호텔이었다가 파리젠느 감자를 곁들인 스테이크였다가 벗은 다리를 감춰주던 침대시트였다가 영등포동에 있는 웨딩타운이었다가 당신 사는 상계동이나 대전의 아파트였다가 엔티크한 삼인용 소파였다가 흐르는 강물처럼 흘러 보낸 사랑이었다가 미라보, 미라보, 미라보 하면 세면대에서 놓쳐버린 은반지였다가 간곡히 비어 있는 꽃병 속 그늘이었다가 꼭꼭 숨어사는 누군가의 ID였다가 마른하늘에 살풋 걸리는 무지개였다가 문득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미라보, 미라보는 얼마나 격렬한가 이 얼..

금세 ( O ) vs 금새 ( X )

"1등으로 달리던 자동차가 결승점에서 뒤따라오던 2등에게 ㅇㅇ 따라잡혔다." "이번 주말 내린 비로 벚꽃이 ㅇㅇ 지고 말았다." "산더미처럼 쌓여있던 과자들이 ㅇㅇ 없어졌다." 위의 문장에서 무언가 너무 빨리 아주 짧은 시간 안에 변화가 되었을 때 쓰는 말인 ㅇㅇ에 들어갈 적당한 단어는? 금세가 맞을까? 금새가 맞을까? 정답은 두구두구두구... '금세'가 맞는 표현이다. '지금 바로'의 뜻으로 쓰이는 부가로 '금시(今時)에'가 줄어든 말이다. '시에'가 줄어 '세'가 된 말로 '금세'가 맞다! 그런데... 잘못된 표기인 '금새'와 헷갈리는 이유는 뭘까? 아마도 '밤새'라는 단어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하는 사이'를 줄여 '새'로 사용하고 '밤새', '그새', '고새', '요새'로 사용된다. "밤새..

비는 느낌표로 내린다 _ 신현락

비는 느낌표로 내린다 신현락 사람 사는 일의 잡다한 말들에 지쳐 말을 놓고 싶을 때 문득 내리는 비를 본다 의자를 창에 가까이 대고 창틀에 턱을 괸다 떠오르는 한 생각을 지우며 비는 ! ! !로 내린다 앞서 떨어진 비를 지우며 연이어 내리는 비의 표정은 단호하다 못해 단순하다 나는 어떤 조짐도 읽지 않기로 작정한다 어떤 계시 같은 것은 더더욱이나! 창을 열고 손을 내밀어 비를 받는다 금세 빗물이 흥건하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다 빗방울은 · · · 로 메모장에 떨어진다 누군가의 전화번호에 스미고 느리게 번져 가는 저 먹물의 고요한 전이, 풍요로운 물물(物物)의 교환, 말이 없으면 물물(物物)의 표정은 말할 수 없이 다양하다 말보다 사람의 일은 훨씬 더 복잡하고 미묘하다 못해 오묘하다 젖은 대기에 스며드는..

종이봉투에 갇힌 길 _ 김종성

종이봉투에 갇힌 길 김종성 낙타는 물 냄새로 길을 찾아가고 연어는 모태 양수 냄새로 길을 찾아가는데 검지로 찍어 길을 가다 외길에서 방향을 잃었다 왼손가락으로 찍은 자음과 오른손가락으로 찍은 모음으로 조합한 언어들은 해부된 실험용 물고기처럼 너덜거리게 구워져 베틀에 걸 수 없게 날줄과 씨줄이 엉켰다 얼기설기 가건물에서 찍어내는 황금잉어빵 재료 조합도 반죽 숙성도 어설퍼 황금잉어라 이름 하기에는 부끄러운 몸뚱이는 종합문예지 발겨 만든 봉투 속에서 굳어가고 있다 한 때 뜨거운 몸으로 하늘도 땅도 품은 적도 있지만 바람 속의 갈대처럼 등줄기가 까맣게 그을려 촛농이 녹아 날개가 부러진 지금은 웃음 한 조각 슬픔 한잔 내려놓을 곳이 없어 외길에서 길을 잃었다 * 2024년 3월 6일 수요일입니다. 긍정적인 생각이..

빨래집게 _ 김경복

빨래집게 김경복 겨울잔디 시린 발목 아랫목 이불 속으로 밀어넣듯 땅 밑으로 밑으로 오그리는데 바지랑대 치워버린 빨랫줄 빈 집게만이 쪼로록 참새새끼같이 떨고 있다 양말이며 청바지며 바람이 훔쳐 가겠다고 넘어올 때마다 '빼앗길 수 없어' 끝까지 악물던 입술 이젠 잿빛 산그림자만 물었구나 걷어진 빨래들과 그 욕심들은 서랍장 속에 개켜지고 흔들리는 건 가슴 속 풀냄새 바람도 낯설은 듯 등 돌리는데 진종일 싸락눈에 시달린 그 입술이 시려워 자꾸 내 입술이 깨물어진다 옷장 밑에 숨겨 두었던 옛날들을 다시 널어야 할 것 같다. * 2024년 3월 5일 화요일입니다.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는 경칩니다. 봄을 준비하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3월의 꿈 _ 임영준

3월의 꿈 임영준 눈의 띄는 대로 다 가두어 놓으리라 졸졸대는 개울도 종알거리는 멧새도 눈 부비는 토끼도 잠시나마 오붓하게 그러안을 수 있게 마법에서 미쳐 헤어 나오지 못한 산마루도 아지랑이 속에 으늑히 잡아 가두어 아름찬 봄의 미소를 반기며 단 한 순간도 어름거리지 않고 환호하게 하리라 난망한 이 녘도 가련한 저 녘도 * 2024년 3월 4일 월요일입니다. 반복은 실력이 되고 믿음은 기적을 낳는 법입니다. 새로운 달, 새로운 기운을 맞이하는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