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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다림질 _ 정끝별

추억의 다림질 정끝별 장롱 맨 아랫서랍을 열면 한 치쯤의 안개, 가장 벽촌에 묻혀 눈을 감으면 내 마음 숲길에 나비 떼처럼 쏟아져 내친김에 반듯하게 살고 싶어 풀기 없이 구겨져 손때 묻은 추억에 알 같은 몇 방울의 습기를 뿌려 고온의 열과 압력으로 다림질한다 태연히 감추었던 지난 시절 구름 내 날개를 적시는 빗물과 같아, 안주머니까지 뒤집어 솔질을 하면 여기저기 실밥처럼 풀어지는 여름, 그대는 앞주름 건너에 겨울, 그대는 뒷주름 너머에 기억할수록 날 세워 빛나는 것들 기억할수록 몸서리쳐 접히는 것들 오랜 서랍을 뒤져 얼룩진 미련마저 다리자면 추억이여 어쩔 수 없지 않냐고 다리면 다릴수록 익숙히 접혀지는 은폐된 사랑이여 * 2024년 2월 29일 목요일입니다. 방향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어떤 바람도 순풍이 ..

젊은 날엔 남겨두라 _ 박노해

젊은 날엔 남겨두라 박노해 젊은 날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할 수 있는 게 너무 없어서 눈물이었다 그랬다 내 젊은은 회한도 있었지만, 좋았다 남겨둔 것이 너무 많아서 갈수록 해낼 것이 많아서 젊어서 뭐든 다 해보라지만 채워도 채워도 다 채울 수 없고 더해도 더해도 다 해볼 수 없는 인생이고 삶이어서 난 모든 좋음이 파생되어 나오는 단 하나만을 찾고자 몸부림쳤고 단 하나에만 전념하고 헌신했다 열다섯에 사라질 것처럼 스무 살에 죽을 것처럼 그것밖에 몰랐다 그것만을 살았다 나에게 남은 건 내 살아온 역사와 애틋한 그리움과 많은 것이 남겨진 이 풍요 좋은 것들은 다 내 앞에 있다 남겨둔 생의 선물들이 위대한 생의 소재들이 오래 품어온 가능성과 희망들이 그러니 남겨두라 좋은 것들은 남겨두라 여백처럼 남겨두라 ..

못을 박다가 _ 신현복

못을 박다가 신현복 메밀꽃 핀 그림 액자 하나 걸으려고 안방 콘크리트 벽에 박는 못 구멍만 만들고 풍경은 고정시키지 못한다 순간, 그 구멍에서 본다 제 몸의 상처 포기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벽 견디지 못하고 끝내는 떨어져 나온 조각들 벽, 날카로운 못 끝을 생살로 감싸 안아야 못, 비로소 올곧게 서는 것을 망치질 박힘만을 고집하며 살아온 나 부스러지려는 자신을 악물고 기꺼이 벽으로 버티며 견디고 있는, 저 수많은 사람들 향해 몇 번이나 못질 했던가 꾸부러지지 않고 튕겨나가지 않고 작은 풍경화 한 점 고정시키며 더불어 벽으로 살기까지 * 2024년 2월 27일 화요일입니다. 만남은 인연이지만 관계는 노력입니다. 소중한 인연을 위해 노력하는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뿌린 만큼 받는 양식 _ 하영순

뿌린 만큼 받는 양식 하영순 달콤한 사탕보다 고통의 쓴맛이 나를 키우는데 거름이 되었다는 사실을 세월이 흐른 후에야 알 수 있었다 태풍이 지난 후에 맑은 강물을 보듯 큰일을 치른 사람은 어떤 어려운 일이 닥쳐도 능히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오늘이 힘들고 고통스러우면 복을 짓는다 생각하고 오늘이 행복하면 그동안 지어놓은 고통의 대가인 복을 받는 것이려니 그래서 인간만사 새옹지마라고 세인들은 말들을 하지! * 2024년 2월 26일 월요일입니다. 무언가 잘 돌아가고 깨끗하게 유지되는 건 누군가의 노력과 희생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들에 감사하는 하루 보내세요. 홍승환 드림

웬일(ㅇ) vs 왠일(X) / 웬만하면(ㅇ) vs 왠만하면(X)

'웬일', '왠일' 헷갈립니다. 자, 아주 간단하게 구분하는 방법입니다. '왠지'라고 쓸 때만 제외하고 모두 '웬-'을 사용하면 됩니다. '웬-'은 '어찌 된'을 뜻하는 관형사입니다. 웬일로 이런 누추한 곳까지 오셨어요? 웬걸 이렇게나 많이 가져오셨어요? 웬만하면 다 붙는 시험이야.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이게 도대체 웬일이냐? 마른 하늘에 웬 날벼락이냐? 웬 영문인지 모르겠다. 웬 사람이 널 찾아왔어. 이게 웬 떡이야. 반면 '왠지'는 부사로 '왜 그런지 모르게 또는 뚜렷한 이유 없이'라는 뜻입니다. '왠지'는 '왜인지'에서 줄어든 말이니 '왜인지'로 바꿔서 자연스러울 때 사용하시면 됩니다. 왠지 느낌이 싸해. 왠지 그럴 것 같더라. 오늘은 왠지 느낌이 좋다. 왠지 우리 모두 똑똑해진 것 같지..

사랑하는 별 하나 _ 이성선

사랑하는 별 하나 이성선 나도 별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외로워 쳐다보면 눈 마주쳐 마음 비춰주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나도 꽃이 될 수 있을까. 세상일이 괴로워 쓸쓸히 밖으로 나서는 날에 가슴에 화안히 안기어 눈물짓듯 웃어주는 하얀 들꽃이 될 수 있을까. 가슴에 사랑하는 별 하나를 갖고 싶다. 외로울 때 부르면 다가오는 별 하나를 갖고 싶다 마음 어두운 밤 깊을수록 우러러 쳐다보면 반짝이는 그 맑은 눈빛으로 나를 씻어 길을 비추어주는 그런 사람 하나 갖고 싶다. * 2024년 2월 23일 금요일입니다. 사소한 것들을 소중히 해야 합니다. 그 작은 것들이 모여 우리의 삶을 이루니까요. 한 주 마무리 잘 하시고 편안한 주말 되세요. 홍승환 드림

하얀 눈밭에 _ 하영순

하얀 눈밭에 하영순 시골길 하얗게 쌓인 눈밭에 강아지처럼 뒹굴고 싶어 자동차를 세워놓고 마음은 뒹굴고 나는 걸었다 발자국 하나 없는 옥양목 같은 눈밭 뽀드득 뽀드득 들리는 소리 눈이 내게 무슨 말을 하는 걸까 한참을 걷다 돌아오면서 그 말뜻을 알았다 이 형광등 네 발자국을 보라는 말이었구나 눈밭에 그대로 흘려 놓은 내 마음 살며시 지켜보는 저 햇살 에구 부끄러워라! * 2024년 2월 22일 목요일입니다.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면 도태되기 마련입니다. 새로운 것들에 관심을 기울여보는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

우산 속으로 비 소리는 내린다 _ 함민복

우산 속으로 비 소리는 내린다 함민복 우산은 말라가는 가슴 접고 얼마나 비를 기다렸을까 비는 또 오는 게 아니라 비를 기다리는 누군가를 위해 내린다는 생각을 위하여 혼자 마신 술에 넘쳐 거리로 토해지면 우산 속으로도 빗소리는 내린다 정작 술 취하고 싶은 건 내가 아닌 나의 나날인데 비가 와 선명해진 원고지칸 같은 보도블록 위를 타인에 떠밀린 탓보단 스스로의 잘못된 보행으로 비틀비틀 내 잘못 써온 날들이 우산처럼 비가 오면 가슴 확 펼쳐 사랑 한 번 못해본 쓴 기억을 끌며 나는 얼마나 더 가슴을 말려야 우산이 될 수 있나 어쩌면 틀렸는지도 모르는 질문에 소낙비에 가슴을 적신다 우산처럼 가슴 한 번 확 펼쳐보지 못한 날들이 우산처럼 가슴을 확 펼쳐보는 사랑을 꿈꾸며 비 내리는 날 낮술에 취해 젖어오는 생각의..

장이 vs 쟁이

대장장이 vs 대장쟁이 도배장이 vs 도배쟁이 양복장이 vs 양복쟁이 미장이 vs 미쟁이 수다장이 vs 수다쟁이 개구장이 vs 개구쟁이 욕심장이 vs 욕심쟁이 중매장이 vs 중매쟁이 월급장이 vs 월급쟁이 광고장이 vs 광고쟁이 겁장이 vs 겁쟁이 점장이 vs 점쟁이 글장이 vs 글쟁이 어떤 게 맞는 말일까? 어떤 경우에는 '장이'를 붙이고 어떤 경우에는 '쟁이'를 붙이는 걸까? 먼저 어떤 일과 관련된 기술을 가진 사람을 뜻할 때는 '장이'라는 접미사를 사용한다. 대장장이, 도배장이, 양복장이, 미장이 등 기술을 가진 직업을 이야기할 때는 '장이'를 쓰면 된다. 다음으로 사람의 성질, 독특한 습관, 행동, 모양 등을 나타내는 말 뒤에 붙여 그 사람을 조금 낮잡아 부를 때는 '쟁이'를 쓰면 된다. 수다쟁이..

겨울을 지키는 나무 _ 김길자

겨울을 지키는 나무 김길자 동장군아 내 살갗을 비집고 깊숙이 들어오는 냉혹한 겨울바람에 나는 걸칠 옷도 없어 춥다 너희들과 동거하는 그때부터 손등이 에이는 잔인한 날에도 마음만은 얼지 않으려 온 힘을 다 기울이었다 강촌에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온 산에 뿌옇게 물들이다 말고 사라지듯 하루살이 해도 질 때면 아름답게 빛을 발하는 것을 보며 한파에도 봄을 키우려는 나무에게 함박눈 받는 은총은 긴 기다림의 축복이었다 * 2024년 2월 20일 화요일입니다. 조금 돌아가는 길을 선택하면 붐비지 않습니다. 부지런하게 조금 먼저 출발하는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